런던의 랜드마크를 뻔한 곳만 맴도는 여행, 혹시 지루하지 않으신가요? 아이들은 이미 익숙한 전시에 시큰둥하고, 어른들도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 그런 경험을 했답니다. 늘 가던 갤러리가 아닌, 전혀 다른 콘셉트의 공간을 찾다가 우연히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V&A East Storehouse)’에 발을 들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박물관의 창고’라기에 호기심 반, 의구심 반이었지만, 이곳은 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진짜’ 박물관의 속살을 엿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박물관에서 마주하는 전시물은 해당 기관이 소장한 수많은 보물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수십만, 수백만 점에 달하는 유물과 작품들은 대중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 바로 ‘수장고’에 잠들어 있죠.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는 바로 이 ‘수장고’를 전면에 내세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공간입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미디어 센터로 쓰였던 건물을 개조한 이곳은, 마치 거대한 물류 창고나 산업 단지 같은 외관으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이 듭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수십 미터 높이까지 뻗은 선반들에는 가구, 조각상, 도자기, 의상, 무대 소품, 디자인 오브젝트 등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전시가 아니라, V&A가 어떻게 유물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연구하는지에 대한 모든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작업실’인 셈이죠.
‘발견’의 즐거움, 어디서도 못 느낄걸요?
익숙한 박물관과는 사뭇 다른 경험에 아이들도 금세 흥미를 보였습니다. 정갈하게 정리된 전시 설명 대신, 물건들은 실제 보관되는 방식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찾아 헤매듯, 이곳에서는 ‘저건 뭘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탐험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17세기 무굴 제국 시대 아그라에서 만들어진 ‘아그라 콜로네이드(Agra Colonnade)’였습니다. 워낙 거대한 규모라 일반 박물관에서는 보기 힘들었을 법한 이 유물이 지하에 자리하고, 위층 바닥을 유리로 만들어 놓아 마치 건물의 일부를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생생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직원들이 실제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직원은 작은 붓으로 유물의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내고 있고, 다른 직원은 작품 복원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관람객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전문가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박물관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통해 우리의 유산을 지켜내고 있는지 깊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뻔한 전시에서 벗어나 ‘진짜’ 스토리를 만나다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는 ‘무엇이 전시되어 있는가’보다는 ‘무엇이 전시되지 않았는가’에 주목하게 만듭니다. 수많은 물건들이 왜 수집되었는지, 어떤 기준에 따라 V&A 본관의 화려한 전시 공간으로 향하고, 어떤 물건들이 이곳에 보관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죠.
제가 이곳을 다녀오면서 느낀 가장 큰 점은, 박물관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보존하는 장소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잇는 살아있는 지식 창고라는 사실입니다.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는 이러한 박물관의 숨겨진 노력과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우리에게 ‘진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 방문 TIP:
* 교통: 런던 동쪽에 위치한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안에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 가능하며, 올림픽 파크 자체도 볼거리가 많으니 함께 둘러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예약: 방문객 수를 관리하기 위해 사전 예약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를 꼭 확인하세요.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 공식 정보
* 준비물: 편안한 신발은 필수입니다. 넓은 공간을 걸어 다니며 탐험하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 마음가짐: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며 자유롭게 둘러보세요. 예상치 못한 발견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다음 런던 여행에서는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에서 박물관의 새로운 얼굴을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분명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