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점성술에서는, 공적 영역은 태양당파에, 사적 영역을 월당파에 할당한다.

이른바 태양(남성성)의 원리는 공적 영역을 수호하는 원칙이고, 달(여성성)의 원리는 사적 영역을 수호하는 원칙이다.

vorosbenisop, 출처Unsplash

달의 쥐와 태양의 쥐: 물질과 영혼, 결과와 과정 점성술에 따르면 사람은 태양 에너지, 달의 에너지를 받고 생명을 수여받았습니다.

동양 사주팔자로 따지면 음양…m.blog.naver.com

앞 글에서 말했듯 이 둘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절대원칙이며, 둘은 전적으로 평등한 가치를 지닌다.

달은 나라의 일꾼이고, 태양은 나라의 통치자다.

달은 경제이고, 태양은 이념(이상)이다.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연 저자 이진우 출판 휴머니스트 출시 2019.06.24。그런데 요즘, 아렌트의 사상이 정리된 책을 읽다가, 아렌트의 정치 사상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고 전자(공적 영역)의 가치를 “정치 행위”로서의 의의에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요즘 유행하는 일상 생활의 정치학 담론이나 미시사나 최신 페미니즘 이론에 따르면 이런 공사 구분론은 사실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렌트가 말하는 공사 구분의 원칙은 지금 일상 생활에서도 의미 있는 측면이 있다.

이해 관계를 생각하면, 우리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 영역을 엄밀히 구별하는 경우가 많다.

사적 행위를 뒤로하고 공적인 윤리와 명분, 공동선의 가치를 앞세워원리는 오늘”공직자 이해 충돌 방지 법”제정처럼 당면한 윤리적 현실이 되고 있다.

정치가의 행실을 판단할 때 정치가가 자기 자신의 사리 사욕을 위해서 공적 명분을 이용하거나 수단으로 삼으면 우리는 그 정치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아렌트는 더 진행되고,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의 영역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을 주장한다.

국가는 결코 가정의 연장선상에서는 없다.

가정의 영역과는 다른 “정치적 행동력”의 영역에 공적 가치를 부여한다.

정치는 함께 살(공동선 운명 공동체)에 의미가 있다.

정치는 가정에서 필요한 경제적 욕구와 필요하다는 원칙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가정의 영역, 즉 사적 영역은 “경제적(물질적)”필요에 의해서 움직인다.

반면 정치적 행위는 오로지”이념과 가치(정신적)”에 의해서 움직이는 영역인 셈이다.

점성술을 가르칠 때 나는 태양과 달을 정신(혼)과 육체(물질)로 나누어 가르친다.

태양권은 토성과 목성이 월 당파에는 금성과 화성이 위치한다.

그리고 공적 행위로 정치적 이상이라는 공적 행성을 태양의 당파에 속하는 토성과 목성과 말한다.

한편 화성과 금성은 “성(육체)”적 접촉인 사교적 만남인 사적 향유이다.

태양은 로버트·슈미트가 말했듯이”선택(Selection)”의 원리이다.

즉, 이는 자유 의지의 영역이고 인생의 정신적 재구축과 이념의 영역이자 영혼의 목적(telos)의 영역이다.

왜 인간이 육체적 조건에 의해서만 살것인가.태양 없는 달은 껍질뿐인 육체에 불과하다.

육체를 움직이는 정신은 태양이다.

아렌트는 그리스인이 폴리스의 영역을 자유와 평등의 영역으로 한 것에 주목한다.

폴리스 내에서의 공동 생활을 그리스인이 잘 알고 있던 모든 공동 생활의 형식과 구별된 특징은 바로 자유였다.

즉 자유라는 것은 정치적 행위를 수행한다는 뜻이며 정치적 행위는 곧 자유이다”세상을 새롭게 구축하는 이념을 만들어 가는 자유로운 행위”이다.

자유라는 것은 뿌리 깊은 각인되어 있는 육체적 필연성에 의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란 것은 인생의 필연성과 결정론적으로 예속되어 있지 않고 남의 명령에 따르거나 가족의 명령에 따르기, 경제적 필요에 굴하지 않다.

사랑과 친밀성의 영역(월의 영역)은 정치적으로 보면 정치적 죽음의 영역이다.

혹시 나도 아렌트처럼 태양의 원리, 즉 남성성의 원리가 곧 정치적인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오해는 금물이다.

남성성과 실제 남성은 다르다.

인간은 모두 태양과 달의 원칙에 의해서 생명을 부여 받았다.

한나, 아렌트는 “운명 공동체”을 중시한다.

이는 이웃 사랑과 다르지 않다.

이웃 사랑을 위해서 주변의 소외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남의 입장이 되어 공감하는 능력은 당연한 덕목이다.

오늘의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이익의 극대화와 세속적 지위, 남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경쟁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러한 물질적 욕구는 사실상 태양의 원칙이 아니다.

정말 사람들이 공동선을 위해서 행동할 때 가장 공적인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사나요?